<푸른 낙엽> 또 다른 한국인들의 삶

푸른 낙엽은 탈북민 작가 김유경이 쓴 단편 소설집이다. 무려 9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인데, 북한 사회, 더 나아가서 탈북민의 사회에 관한 소설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당연히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많이 들어봤지만,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그저 가난한 나라인 만큼 우리나라랑 달리 굶주리면서 살겠지 하면서 생각했다. 이 책은 북한 안에서의 삶, 탈북 도중의 중국에서의 삶, 그리고 탈북한 후 한국에서의 삶 등 다양한 각도에서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탈북민들을 단풍으로 미처 물들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떨어진 푸른 낙엽에 비유하면서, 북한에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이 도피처를 찾게 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소설에 나타내고자 했다.

특이하게도 이 책에서 탈북 과정에 대한 묘사는 잘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소개에도 다른 탈북민들의 작품처럼 '북한 인권문학'이 아니라고 소개된다. 다른 탈북민들이 쓴 작품은 탈북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와 납치 등의 일을 소개하면서 인권 유린의 현장을 보여주지만, 이 책은 오히려 탈북 과정에 대한 소개 없이 북한에서의 삶과 남한에서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분명 북한 사람들의 삶과 남한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고, 해가 지날수록 탈북민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 작가는 북한 인권문제의 실태를 고발하는 대신, 북한과 남한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며 북한과 남한과의 차이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그럼으로써 탈북민이 남한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고 통일이 더 빨라지기를 바라고 있다.

9개의 소설 중 크게 인상 깊었던 소설이 2개 있는데, <자유인>과 <붉은 낙인>이다. <자유인>에서는 북한을 위해 유럽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제재에 걸리지 않고 평양으로 빼돌리는 외교관 출신 탈북자가 나온다. 하지만 이 탈북자는 북한에서 누구보다 많은 것을 누리며 상류층으로 살았던 모습을 버려버리고, 조용히 바닷가 관리원 일을 하거나 산골에서 배추를 심으면서 산다. 어쩌면 자본주의 세상에 빠져 재산과 지위를 차지하려 노력하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자유를 찾아 탈출한 탈북민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 진정으로 자유만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붉은 낙인>에서는 먼저 탈북했던 진옥이 아직 북한에 남아있던 진미를 탈북시키기 위해 브로커를 찾는데, 알고 보니 진미는 탈북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북한한테 세뇌된 상태로 오히려 보위원의 말을 듣고 진옥을 납북시키려고 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결말에 도달하는 소설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진옥과 진미를 통해 남한에서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과 북한에서 바라보는 남한의 시각의 차이를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거의 80년을 향해가는 분단의 역사는 같은 민족의 생각을 이렇게나 바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도 남한과 말이 통하는 같은 민족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문화어는 한국어와 크게 차이가 없어 통역 없이 서로 소통이 가능한 정도라고 한다. 이 책에서도 문화어에서만 쓰는 표현들이 일부 나오지만, 읽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 80년째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를 찾아봐도 얼마 없는 크나큰 비극이다. 비록 소설에서는 진옥과 진미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다시 헤어지지만, 과연 가까운 미래에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진옥과 진미가 함께 떠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