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과 나의 사막> 로봇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주인공 랑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이 멸망한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지구는 이미 거의 모든 동식물이 사라져 황폐해진 지 오래고 인간이 노인까지 살다가 죽기에는 너무 위험한 세계가 되었다. 그렇게 끝없는 사막 속에서 랑의 엄마인 조도 죽었고, 랑도 결국 죽게 된다. 특이하게도 랑과 같이 살던 동거인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인 고고였는데, 로봇이라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랑의 장례식은 아직까지 랑의 집에 남아있던 고고와 랑의 친구인 지카가 치렀는데, 고고는 지카가 왜 그렇게 허탈해하고 왜 그렇게 쓸쓸해하는지, 그리고 왜 랑의 시체를 땅속 깊이 묻어두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지카가 갈 곳이 없으면 같이 바다로 가자고 했을 때, 그제야 고고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목적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져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다른 로봇들과 달리, 고고의 기억은 랑이 모래 속에 파묻혀있던 자신을 구해줬을 때부터 시작된다. 어떠한 명령이나 지시도 받지 않은 채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랑이 세상의 전부였던 고고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도중 결국 새로운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 채 랑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마지막 명령을 따르기 위해 랑이 가고 싶었던 과거로 가는 땅을 향한 여정을 출발하게 된다. 이 점에서 고고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흔히들 상실을 이겨낸다고 하지만, 상실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으며 소중한 사람의 상실인 경우 이겨내지 못하고 매몰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고고의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하던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에 가까운, 완전 다른 이유로 행하는 것이지만, 그런데도 랑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랑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막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도중 고고는 다른 로봇인 알아이아이를 만나게 된다. 알아이아이는 이미 죽어버린 주인을 기다리며 마지막 명령인 트랙터의 경로를 바꾸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트랙터에 몸을 부딪쳐가며 자신을 부숴가고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봇의 모습처럼 마지막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모습이다. 고고도 똑같은 로봇이고, 똑같이 마지막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지만 알아이아이를 이해하지 못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같은 로봇이지만, 고고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해주고 직접 자신의 팔을 떼주는 등 랑이 했던 것처럼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모습은 마치 두 로봇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 아니라 사람과 로봇이 대화하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에 도달한 과거로 가는 땅에서 만난 살리는 고고와 사람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물어본다. 그렇다. 고고가 사막으로 가는 여정을 결정한 일, 그리고 여정 중에 행동한 행위들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고고는 자신한테 감정을 느끼는 회로가 없다고 하지만, 감정은 기본적으로 실체적인 현상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이다. 인간의 감정, 기억, 생각 등도 표면적으로는 뇌 속에 있는 시냅스를 통한 전기신호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도 고고처럼 화학적인 전자회로로만 이루어진 존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여기서 실제로 감정을 느끼는지 아닌지가 왜 중요하냐고 역으로 물어본다. 고고가 감정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고고가 감정을 느끼는 회로가 있는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할까? 우리가 감정에 의해 행동하는 행위 그 자체가 감정을 느낀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애초에 감정이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겉모습이 사람인지 로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감정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고고도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