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사랑을 SF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라는 제목과 하트로 가득 찬 표지 때문에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지만, 읽어보니 이 책은 사실 SF 소설 앤솔러지였다. 그런데 SF 소설 앤솔러지라고는 하지만 'SF 소설'은 '판타지 소설'처럼 너무 광범위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장르의 방대함을 증명하듯 이 책을 이루는 5개의 소설에서도 명확한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이 책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 '사랑' 자체가 이 책을 관통하는 공통점일 것이다. 5명의 작가가 'SF 소설'만큼이나 정의하기 어려운 '사랑'을 나름의 방식대로 SF 소설로 표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5개의 소설 중 인상 깊었던 2개의 소설이 있는데, 먼저 김초엽 작가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가 있다. 인공장기를 배양하는 회사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인공피부를 배양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내용인데, 역사가 깊은 SF 장르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주제인 인공피부를 찾아내서 소설로 쓴 것을 보고 작가가 매우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인공장기는 단순히 심장을 다치면 교체하고, 눈을 다치면 교체하는 등 단순히 수술을 대체해줄 의료적인 목적만 달성한다면, 인공피부는 곰, 고양이, 용, 늑대 등 인간과 완전히 다른 종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다. 물론 피부만이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요소는 아니겠지만, 이를 통해 '피부가 달라지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이 외에도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사랑과, 금속 피부를 이식받은 후 스스로 녹슬어가는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결말까지,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볼 점이 많았다. 읽으면서도 쏟아져 내리는 새로운 설정들 때문에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열심히 기대하면서 읽었다.

다음으로는 천선란 작가의 <뼈의 기록>이 있다. 소설 배경은 미래시대로, 안드로이드가 보급되면서 장의사 대신 장례를 치르는 장의사 안드로이드가 생겼다는 설정이다. 장의사 안드로이드인 로비스는 고독사한 노인, 자살한 여자, 사고사한 아이 등 여러 시체들의 장례를 치르며, 마지막에는 자신과 같이 말동무를 해주던 청소부 모미의 장례를 치러준다. 같은 작가의 <랑과 나의 사막>에서도 느낀 거지만 천선란 작가는 안드로이드 같은 기계적인 생각으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잘하는 것 같다. 과학적인 사실인 적혈구의 기능을 얘기하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주거나, 아름다움의 정의를 듣고 나서 뼈가 아름답다고 정의를 내리는 등의 모습을 보고 느꼈다. 또한, 이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루어진 소설의 구성단계를 완벽하게 지킨 소설이기도 하다. 45페이지의 짧은 소설에 복선들도 넣어가며 우주선에서 장례를 치르는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는 모습은 읽은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절정'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 짧아서 아쉬웠던 다른 소설들과 달리 짧은 글임에도 탄탄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수백 페이지의 소설을 다 읽은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남녀 사이의 사랑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보편적인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다. 혼자서만 지내는 학우한테 먼저 다가가 친구가 돼주는 일,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는 아이한테 다가가서 안아주는 일, 애인과 만들었던 마지막 작품을 스스로 완성하는 일, 평생 볼일 없을 유가족들을 위로해주고, 함께 일하다 죽은 동료를 위해 그 마음을 헤아리고 평생 내본 적 없던 용기를 내본 일. 이 모든 것들은 인간만이 가능한 비논리적인 행동이고, 그러므로 '사랑'으로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5명의 작가는 서로 다른 세상의 모습을 그렸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이 존재할 것이다.